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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스토리 # 어머니 생일에 돈봉투를 선물한 어린 조카를 보며

꼴P 2013. 1. 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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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도시락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에 방문했다. 제휴를 맺은 프로덕션에서 이 사회적 기업의 홍보영상 제작을 의뢰받았고 꼴찌는 그 스탭들과 동행한 것이다. (현장 동행 취재기는 다음 주 월요일(14일) 발행 글에서...)

 공교롭게도 같은 날 아버지 정기 진료가 있었고, 오래전부터 허리 통증을 느꼈던 어머니도 진료를 받기 위해 함께 서올로 올라 오셨다.다음 날이 어머니 생신이라 부모님 모시고 고향으로 향하던 길에 아버지께 촬영장에서 느낀 점을 짧게 말씀드렸더니,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돈을 벌고 움직여야지. 경로당에만 모여서 꿈적거리지 않고 있으면 더 병나고 보기 안 좋지"

 ▲ 아버지의 아침 일상은 허벅지나 뱃살에 인슐린을 주사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몇 년 전, 발가락에 작은 상처가 생긴 적이 있었다. 발가락 끝에 난 작은 상처는 누가 봐도 금세 치료될 미비한 상처였다. 시장통에서 병원 갈 시간도 없이 바쁘게 나날을 보내던 아버지는 느지막이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의 심각성을 아셨다.

몇 달 동안 그 작은 상처는 점점 커졌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모셨을 때는 골수염으로 발가락을 절단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당뇨병 때문이었다. 동생이 인터넷 검색으로 당뇨병 발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알아냈고, 그 병원으로 옮긴 후에야 몇 달간의 치료 끝에 아버지의 발가락을 완치할 수 있었다.

어느 병원에서는 발가락을 잘라야 했고, 어느 병원에선 심장혈관 수술을 선행해서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여 발가락 절단을 피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매일 발 크림을 바르시면서 어제도 오늘도 바쁘게 일하고 계신다.  

 

 
오늘은 어머니의 생일이다.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아침이라도 함께 먹고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향에 다녀왔다. 이른 아침 동생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머님은 

"요즘 이렇게 생일이라고 아침상 차려주는 며느리가 어디 있어. 대충 우리가 알아서 먹으면 되는데 귀찮게 상을 차려준다니 고맙네..."

이어서 하신 말씀은 빈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 큰 며느리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도 당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쳐 큰아들이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고향 내려와서 장사를 같이 하자고 하신다. 되도록이면 빨리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는 것도 숙제 중 하나다. 



오늘 아침, 어머니 생신의 빅 이슈는 조카 녀석의 선물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조카는 어머니께 노란 봉투를 건넸다. 그 봉투 안에는 만 원짜리 지폐와 천 원짜리 몇 장 그리고 동전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 용돈이에요" 

엄마 지갑에서 몰래 꺼내서 넣었단다. 부모님은 당돌한 조카의 선물에 웃음을 멈출 줄 모르셨다. 아버지는 '직접 벌어서 용돈을 줘야지!' 하며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을 하시더니, 어린 손자에게 용돈 받으려면 20년이나 더 살아야 하는데 그때까지 아버지는 살 수 있다, 어머니는 그때까지 살아서 뭐하냐며 가벼운 설전을 벌였다. 

돈 봉투보다는 삐뚤삐뚤한 글씨가 담긴 편지 한 장이 더 느낌 좋은 선물일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내 딸에게도 선물을 준비 못 시켰고, 나 또한 준비한 게 없었다. 단지 아침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었을 뿐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차비 받아가라"

"차비 있어요..."

예전에도 고향에 다녀갈 때면 차비를 챙겨주려는 어머니와 차비 있다고 마다하는 꼴찌 사이에는 실랑이가 벌어진 적이 잦다.

"마흔이 돼고 쉰 살이 돼도 아들은 아들이지, 차비 챙겨주는 엄마 마음만 생각하고 받으면 되지..."

 

 

 

새해에는 끊으려던 담배를 사서 한 가치 피웠다. 응어리진 뭔가를 니코틴이 달래는 것 같다. 담배를 피우고 하늘을 봤는데, 참새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웅크리고 있었다. 복구자비필고 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사는데, 참새는 날아봐야 이 나무에서 저 나무일 뿐이다.

채널이다, 플랫폼이다, 콘텐츠 기획이다 말만 앞섰지, 인터넷상에서 짹짹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른 새벽 5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하시는 70대 이상의 고령자들은 하나같이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자식들 눈치 안 보고 용돈 직접 벌어 쓰고, 손자들 용돈도 주고, 건강도 챙길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하셨다.

한편, 노인들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활기찬 노년을 살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 있는 반면에 생활고에 시달리던 노인이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됐다는 씁쓸한 뉴스가 공존하는 오늘이다. 

 

"가장 아름다운 효(孝),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드리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꼴찌의 짧은 생각은 가장 아름다운 효(孝)는 관심과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진료차 오신 부모님과 함께 점심을함께 했지만, 내 일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어머니와 함께 아침을 함께 하는 것이 효라고 생각했다. 

내 조카의 기억에 돈 봉투를 받으며 웃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웃음보다, 어젯밤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태극 1장을 하고, 훌라후프를 돌릴 때 웃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웃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장문의 글을 쓰고도 가슴이 허한 것은 여전히 내가 불효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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