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음복하세요! 점점 사라져가는 풍경

꼴P 2010. 4. 1. 08:00
728x90
반응형


위 배너를 클릭하시면 꼴찌만세 페이스북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제삿상을 차리는 중 딸과 조카들은 벌써 제사음식에 눈독을 들였다.
30년 전, 내가 아이들 나이일 적에도 그러했던 기억이 난다. 도루쿠 칼이라 불리는 작은 칼로 밤을 깎는 할아버지의 빠른 손놀림을 신기해 하면서 하얀 밤알이 속살을 드러내면 할아버지 몰래 훔쳐먹던 기억.

"제사음식은 제사 끝나고 먹는거야! 조상님들이 드시고 나면 그 때 먹어야지... 제사 지내기도 전에 음식 먹는거 아니야!"

어려서부터 '조상님들이 드시고 나면'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음식은 상 위에서 사라지지도 않고 결국 먹는 사람은 우리 가족들인데 할머니께서는 조상님이 드시는 음식이라고 하시니...
혼란스러웠다.ㅎㅎ


방 한 켠에서는 할머니와 작은 할머님들이 모이셔서 옛날 이야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이 고생시킨 이야기를 주고 받으신다. 이것도 제삿날이니 볼 수 있는 풍경 같다.

어렸을 적 제삿날이 되면 단칸방에 친척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무척 많은 친지들이 모이셨다. 
그 분주함과 웅성거림이 그리 싫지 않았던 이유는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친척 어르신들의 칭찬에 기분좋은 포만감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장손인 나는 어려서부터 집 안의 기둥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첫 째로 태어났을 뿐인데ㅎㅎ
친척 어르신들의 기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원기회복의 자양강장제 같기도 하고, 동시에 쓴 한 잔의 소주와도 같았다. 






증조모님의 제삿날 
결혼 후, 일이 많아 바쁠때는 참석하기 힘들었지만, 요즘 한가한 틈을 타서 아이와 함께 고향으로 향했다.

이제 만 4살이 된 딸과 만 3살이 된 조카들에게 제삿날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내가 그 나이때 느꼈던 웅성거림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온 가족이 모여 절을 하고,
절을 하고 나면 고기부터 과일 과자 등을 먹을 수 있는 날. 그 정도로 알고 있지 않을까싶다. 

"고조할머니가 증조할머니야..."

고조할머니가 누구인지 증조할머니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제사가 끝나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아이들 입에서 고조할머니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이 제사라는 형식의 전통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을까?
점점 핵가족화 되어가는 가족 형태와 더불어 전통적인 의식이 한편에서는 허례허식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아버지는 가끔 

"내가 죽고나면 시대는 변하고 제사도 사라질거야... 어디 제사 지내는 사람이 있을까?"

아버지는 급속히 변하는 시대에 점 점 제사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뭔지 모를 느낌의 표정을 지으시곤 했다. 
(아버지 제사상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겠지만, 제사상 안 차리거나 잊지는 않겠습니다. ㅋㅋㅋ)

제삿날이면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맏며느리, 내 아내다.

우리 집은 공교롭게도 설날 명절을 지내고 열흘이 지나면 증조부 제사가 있다. 그러니, 명절음식 준비하느라 바빴던 아내는
명절증후군에서 회복될 만 하면 또 다시 고향집에서 제사음식을 준비한다. 불평을 털어놓으며 투덜대기도 하지만,
매 년 아내는 거르지 않고 고향집에서 제사 준비를 했다. 고마운 나의 아내.

제사상 가득 채운 음식들. 차례가 지내고 나면 음복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가족들이 모여 제사음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고,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옛날 이야기 주고 받다가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던 제삿날 풍경. 

소소한 사건이 벌어지는 제삿날.
많은 음식과 많은 사람들 사이에 담겨있는 소중한 이름 <가족>.
조상님을 기리고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모처럼 하루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화목한 풍경이 제사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그 소중한 풍경이 점 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