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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친정엄마' 딸을 보낸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

꼴P 2010. 4. 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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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가게'라는 발신자 명으로 집 전화기 벨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한 동안 연락이 없어 궁금해서 전화 하셨다며 손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하셨다. 딸과 아내는 미용실에 머리 하러 간 사이라 딸의 목소리를 들려 드릴 수가 없었다. 그 간 별 일 없었는지 안부를 여쭤봤더니 목소리가 쉰 소리로 변하신다. 워낙 일만 해오신 분인데가 한 동안 허리통증 때문에 고생하셨던 어머니. 요즘 가게 공사로 인해서 돈이 적지 않게 지출되었다며 한 숨을 쉬셨다. 


친정엄마
감독 유성엽 (2010 / 한국)
출연 김해숙,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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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바뻤니?"
"네...뭐 이것 저것 알아보느라 바쁘게 다녔어요?"
"그래... 바뻐야 돈 많이 벌지..."
"......"


내 부모 뿐만아니라, 우리 어머니 세대의 분들은 삶의 안녕과 행복의 기준이 돈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아들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걱정 반 염려 반으로 살아가시는 당신에게 아무 걱정말라고 당부해도 어머니는 조만간 내 속 옷을 또 찾으실 것이다. 매 년, 한 번씩 입고 있던 속 옷을 태워야 액땜을 한다는 어머니만의 위안.내가 무속신앙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어머니의 이런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이 모든 것이 아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지난 4월 16일. 서대문 아트홀에서 <친정엄마>의 시사회가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손수건까지 챙길 정도로, 그 동안 메말라 있던 안구를 촉촉히 적시고 돌아오겠다고 작정하고 나섰다. 

20대 중반에 여기 저기 닥치는대로 시사회에 신청해서 참석하고, 편식없이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 듯 장르 불문하고 많은 영화를 관람했었다.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일반 시사회의 가장 큰 단점은 영화 관람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하다는 것이다. 영화 시작 전부터 여기 저기서 들리는 수근거림은 영화 상영 중에도 계속 되었고, 심지어 3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온 관람객도 있을 정도로 시장통 같은 분위기였다. 반면에, 그런 분위기여서인지 영화의 반응은 쉽게 느낄 수 있다. 사소한 대사 한 마디에도 웃음을 터뜨리고, 미리 예정돼있는 신파에도 관객들은 의도대로 훌쩍거리곤 한다. 

영화는 <친정엄마>라는 제목에서부터 신파를 예고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담백한 영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옛날 MBC주말 연속극 아들과 딸의 후남이를 연상케하는) 설정과 이야기. 시골의 가난한 일상 - 딸의 서울생활 - 불치병 - 눈물의 이별 이라는 평범한 스토리 구조였지만 가식적으로 꾸미려 하지 않아서 담백하다고 느꼈다. 시나리오 작가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와 영화 속 소소한 소재들이, 예를 들면 가난한 시골생활을 단적으로 보여 준 황도켄, 삼양라면 봉지에 가득 쌓인 동전, 신문지에 쌓인 순대, 부적 등- (개인적으론 이 소재들이 옛날 생각에 젖어 들게 하기엔 충분한 소재였다)- 이런 양념을 곁들인 시골 된장국을 맛나게 먹을 손님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안타까운 의문이다. 어렸을 적 깡통에 들어있는 황도를 접하는 날에는 동생과의 신경전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삼양라면 봉지에 쌓인 동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난 어렸을 적 엄마가 몰래 찬장 안 밥공기 속에 담아 둔 동전을 몰래 꺼내서 오락실에 가는 영특함(?)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신문지에 쌓인 음식이 순대인지 고구마인지 잘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할아버지께서 신문에 쌓인 순대를 사오시던 날이 기억에 생생하다. 순대에 베인 신문지 기름냄새와 시골 순대의 양념이 버무러진 순대.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삼키시는 막걸리 넘어가는 꿀꺽소리. 내 소중한 향수다. 영화에서 그런 향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게 아쉽다.


대부분의 시골 정서상 딸보다는 아들을 선호하는 분위기인데, 남아선호사상을 비꼬고 싶었을까? 영화에서 시종일관 엄마는 남동생의 머리를 쥐어박고, 딸만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술만 취하면 폭력을 일삼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도 몰래 황도켄을 딸에게 건네는 장면을 통해 부정을 표현하며 '아들'보다 '딸'을 더 귀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세히 읽어 보고 싶지 않은 딱딱하고 두꺼운 책을 든 것처럼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다가 영화 중반에 엄마 김해숙님의 '여자가 속상할 때 갈 곳 없는게 제일 서럽다. 그렇기 때문에 시골집을 지키겠다'는 대사를 듣고 나서부터 영화 제목 '친정엄마'를 새기며 호흡을 가다듬고 동공을 확장시켜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어수선하던 관객들도 영화 중,후반부터 전개되는 2박 3일 간의 친정엄마와 딸의 동거에서부터 조용히 영화에만 몰두하는 듯. 그리고 이어지는 훌쩍거림. 엄마역의 김해숙님이 펼치는 밀도높은 눈물연기는 역시 국가대표급 엄마역이었다. 그럼에도 저 역할을 다른 분이 했었더라면 하고 생각했던 이유는 뭘까...



아주 잠깐 이 어머니 역할을 나문희선생님이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열혈남아>에서의 어머니 역할에서처럼 아들을 향한 시선이 아니라 그 감정 그대로 딸에게 보내는 시선이었다면 어땠을까? 퉁명스러운 듯 하면서도 자식을 아끼는 엄마의 모습. 각설하고 영화가 끝난 후, 자리를 뜨지 못하고 눈물을 닦는 여성관객들이 많았던 것 보면 이 영화는 반은 성공한 듯 싶다. 최루성이든 신파든 이 영화의 목적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소재로 한 영화는 <친정엄마>외에 여러 편 있다.

엄마
감독 구성주 (2005 / 한국)
출연 고두심, 손병호, 김유석, 김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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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다큐멘터리를 소재로 한 영화 <엄마>. 멀미가 심해 서울에 있는 아들을 만나기 힘든 엄마의 이야기를 선배가 촬영해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 <엄마>에서는 아들을 만나기 위한 설정이 아니라 어지럼증에도 불구하고 막내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먼길을 떠나는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그렸다. 


두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당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이 먼저인 일반적인 우리 어머니 상을 그렸다는 것이다. '엄마'라는 2음절의 단어만 들어도 심장의 울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모든 어머니들의 희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엄마...
감독 류미례 (2004 / 한국)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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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금 독특한 설정의 같은 제목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2003년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 옥랑상(다큐 사전제작 지원작) 수상작인 류미례 감독의 자전적 성격의 독립다큐멘터리 영화 <엄마>

이 영화는 앞 서 말한 두 엄마의 영화와 반대로 딸들을 모두 시집보내고 난 후,남편과 사별한 60대 어머니가 애인을 사귀면서 <엄마>로서의 삶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삶을 택한 엄마의 이야기를 딸인 류미례 감독이 직접 영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사실, 이 영화를 DVD로 감상하면서 난 내 어머니가 저러하셨으면 했다. 영화에서 엄마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 화장도 하고 뽐을 내고, 모임에서는 거침없이 술도 마시고 춤도 추며 남자친구를 자랑하기도 했다.  내 어머니가 영화의 엄마처럼 이제는 당신의 삶을 살아가셨으면 하고 바랬던 기억이 난다.

왜 어머니는 자식을 이길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 왜 자식들에게 생선 가시 발라가며 살만 골라주시고 부엌 구석에서 생선 머리만 드시는 것일까?

엄마! ...
자식걱정으로 하루를 평생 같은 고민으로 살고 계시는 엄마,

떨어져 살면서 잊고 있다가도 힘들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 엄마...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보다도 이제는 자신의 삶을 더 소중히 하며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친정엄마> 트레일러 (예고편)



카라의 발라드 곡 'Lonely'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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