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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꼴찌의 짧은 생각] #8. 보호자

꼴P 2017. 1. 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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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전, 막둥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다녀왔다. 독감 증세로 기침과 콧물이 심했다. 아이의 아버지로서 보호자 역할을 했다. 오후에는 또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보호자 역할 때문이었다. 

문득, 기저귀에 관한 짧은 생각이 스친다. 아버지가 차고 계시던 대형 기저귀를 갈고 집에 돌아와서는 막둥이의 소형 기저귀를 갈면서 오묘한 감정의 교차를 느꼈다. 기저귀의 크고 작음 사이의 공통분모는 보호자였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내 딸의 아버지로서 나는 두 사람의 보호자였다. 

사실 입원 중인 아버지의 보호자로 가장 고생이 많은 분은 어머니다. 벌써 한 달을 지나 두 달 째다. 야전침대처럼 생긴 접이식 의자에서 불편한 새우잠을 주무셔야만 했다. 오래간만에 일 없이 편하게 보내고 있다는 아버지의 농담에 어머니는 맞장구를 치셨다. 하지만,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발견하는 미간에 드리워진 주름과 그림자를 보면 어머니 속이 얼마나 까맣게 탔는지 알 수 있다. 


어제는 이모님들이 내원하셨다. 한 분은 풍기에서, 한 분은 수서에서 출발해서 병원에 세 자매가 뭉쳤다. 병실 내 다른 환자의 간병인은 세 자매의 모습이 보기 좋다며 너스레를 건넸다. 어머니와 이모님들은 그날 찜질방에서 주무시기로 했단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아버지의 보호자로서 하룻밤을 보냈다. 

오랜 시간 나의 보호자였던 아버지는 마흔이 넘어 아버지가 된 나의 보호가 썩 편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계속해서 시간을 물었고, 잠을 뒤척이기도 하셨다. 고지식한 아버지와 장남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여느 가정이나 비슷할 거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대화는 길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동이 트기도 전에 아버지는 휴대폰 최근 통화목록에서 '엄마' 라고 저장된 번호를 눌렀다. 나에게 엄마인 여자는 아버지에게는 아내다. 그런데, 아버지의 전화기에 엄마로 저장되어 있다. 그 이른 시간에 전화를 거시니 못 받을만한데 연거푸 다섯 번이나 전화를 거셨다. 

"오랜만에 이모들 만나셨는데 좀 쉬고 오시게 두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무엇이 불안해서였을까. 오전 10시경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방 속에 넣어둬서 받지 못했다는 음성이 아버지 휴대폰에서 들린다. 

"얼른 안 오고 뭐해...?"

"언니, 동생하고 바람 좀 쐬려고 하는데요..."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찜질방으로 출발하기 전에 아버지께서는 하루 푹 쉬고 심지어 내일 오라고까지 하셨단다. 그런데, 정작 병실을 비운지 24시간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는 보호자를 찾고 있었다. 병원에서 한 시간이나 넘는 거리에서 이모님들과 담소를 나누셨을 텐데, 

"네 얼른 갈게요..."  

 정오가 조금 지나 어머니는 병실에 도착하셨다. 그때야 아버지의 얼굴에 미세한 표정 변화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된다는 말이 이래서 생겼나 싶다. 아버지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은 아들보다 아내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나의 보호자 이셨고, 사고로 치료 중인 지금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아들로서 보호자 역할을 잘하고 싶지만, 나는 또 나대로 보호자로서 지켜야 할 자리가 있다. 어머니는 평생 아버지의 보호를 받으신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늙어가면서 지켜야 할 자리가 더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글/사진 생각하는 꼴찌 kkolzzi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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