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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의 짧은 생각] #68. 서울로의 애물이 된 슈즈트리

꼴P 2017. 5. 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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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0일. 1970년 3월에 개통된 서울역 고가가 2017년 서울로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7017서울로' 메인 타이틀의 숫자는 개통된 년도와 재탄생 된 년도를 따온 것이었다. 걷기를 즐기는 편이고, 블로그 콘텐츠 촬영 겸 지난 21일 서울로를 다녀왔다. 자세한 포스팅은 53CUT 현장스케치에서 다시 정리하기로 하고, 오늘은 논란이 되고 있는 슈즈트리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짧은 생각에 관한 글이다. 


 

서울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눈에 띄는 조형물이 보인다. 형형색색 수천 개가 넘는 신발로 만들어진 슈즈트리가 그것이다. 



'슈즈 트리' 


신발 나무라는 뜻을 가진 이 작품은 고가를 숲길로 만든 7017프로젝트와 내용적으로 맥을 같이 하는 공공미술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부 시민과 예술가들에게 날선 비판을 받고 있다. 




"아유 냄새날 것 같아." 

"아니... 왜 더러운 신발을 이렇게 쌓아 뒀대...?"


현장에서 귀동냥한 시민들의 말이다. 





내가 직접 들은 부정적인 말은 50대~60대 시민들의 말이었다. 마냥 비판하는 시민들의 시선을 예술적 안목이 없다고 치부할 것인가. SNS상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슈즈트리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고 있다.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시선과 가치에 따라 날선 비판의 글이 오르고 있다. 




내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나 또한 생각을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의도한 영상을 시민들이 욕하거나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해석해서 비난한다면 답답할 것이다.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형식적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여 비난하는 것은 지양할 태도다. 하지만, 이 대형 슈즈트리는 개인전이 열리는 갤러리에 전시된 것이 아니라 시민의 광장에 설치된 것이다. 


잘 모르는 내용이라 길게 쓰지는 않겠지만, '기울어진 호'라는 공공미술 작품과 비교하는 글도 읽었다. 공공미술의 적확한 의미를 모르겠으나, 공공미술이라하면 개인의 예술가치를 담은 작품보다는 공공의 장소에서 대중과 예술로 소통하며 공감하는 미술이라 이해하면 되겠다 싶다. 

  

예술적 안목이 얕은 나는 슈즈 트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의미를 파악할 정도의 깜냥이 되질 않는다. 서울로가 고가를 숲길로 만들어 마을을 잇는다는 걷기 프로젝트 <7017서울로>와 신발이 갖는 연관성은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의 체중을 감당하다가 버려진 신발이 미술작품으로 새롭게 재가공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서울역 광장을 차지하며 건네는 미술적 가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슈즈트리가 아름답기를 바라지 않는다. 흉물이라는 선입견도 없다. 냄새가 날 것 같다는 비뚤어진 상상도 하지 않는다. 단지, 마음이 움직이질 않았다는 것이다. 왜 저렇게 많은 신발을 모아서 나무를 만들려고 했을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몇 번씩 봐도 대사와 상황을 이해 못할 때 영화를 읽는 내공이 부족하다고 관객만을 탓할 수 없지 않겠나.  

   

슈즈 트리는 내 마음에 없었지만, 신발 화분은 내 마음에 꼭 들어왔다. 시민들이 이벤트에 직접 참여해서 신발에 꽃을 심고 있었다. 



신발이 화분이 되었다. 보자마자 내년 봄에는 집에서 신지 않는 신발에 씨앗을 심어서 신발 화분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예쁘고 신선했다. 




현장에서 짧은 생각이 스쳤다. 


서울역 광장에 대형 슈즈트리가 아니라, 서울로 곳곳에 신발화분이 전시되었다면 미관상으로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짧은 생각. 이건 정말 짧은 생각이다. 


작가가 슈즈 트리를 통해 시민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고 기록한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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