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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호수길> 외로운 소년이 건네는 침묵의 다큐

꼴P 2010. 6. 3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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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밤

씨네코드 선재에서는 '인디포럼 월례비행'이라는 행사가 있다. '상품'보다는 '문화'로서 영화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시선과 해석으로 읽히길 바라는 사람들과 상업적인 영화를 벗어나 조금 지루하고 불편해도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접하려는 관객들이 만나는 자리다.


2010년 6월 인디포럼 월례비행은 정재훈 감독의 <호수길>


 

정재훈 감독의 영화<호수길>은 감독이 나고 자란 응암동. 그 마을에서 일어난 철거현장을 담은 영화다. 기록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영화는 확연히 구분되는 2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표현하기 용이하게 1,2부로 나누자면 1부는 동네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동네 전경. 2부는 인위적인 사운드와 이미지의 절묘한 조화를 통한 감독의 저항과 외침.


영화문법과 영상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나래이션도 없고, 마을사람들의 SOV(현장음)조차 없는 영화는 72분이라는 러닝타임동안 큰 인내심을 강요했다. 서두에 구분했듯 1부에 해당하는 마을의 일상은 대략 30여 분 동안 어떠한 설명(나래인션이나 현장음)없이 알아서 이해하라는 듯한 오해를 살 정도로 불편했고, 그런 식의 독백에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거리를 두고 일상에 대한 관찰을 하겠다는 의미였을까? 카메라를 멀리서 두고 극대의 줌으로 촬영한 화면은 픽셀이 깨질 정도_(PD170의 카메라 성능 때문이었을까? 감독의 일상에 관해 거리를 두고 관찰하겠다는 다큐적인 접근과 의도였을까?)_의 화면이 일그러진 상황에서의 덜컥거리는 팬(화면이 좌나 우로 움직이는)등이 영화에서 어떤 의도였는지 궁금한 점이 많은 영화였다.  


영화에서 동네사람들과 더불어 개와 고양이가 출연(?)한다.
이미 몇 년 전, 친한 후배가 용산철거현장에 노닐던 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하고 해외에서 상까지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잠깐 출연한 개와 고양이의 일상은 다양한 각도의 시선과 접근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제일 큰 아쉬움은 역시 마을사람들의 일상 속에 그들의 현장음이 없다는 것. 유일하게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장면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것도 감독의 의도였을까?

그런데, 

침묵의 일상이 40여분 정도 지났을 즈음...

마을의 밤 전경에서 들리는 을씨년스런 오디오는 포크레인의 바퀴 굴러가는 듯한 소리였고, 바로 다음 장면(편의상 나누었던 2부의 시작)에서 지루했던 30여분의 영상, 빨리 흘려 보내고 싶었던 침묵의 일상. 노는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표정까지 되새김질 하며 곱씹게 만드는 기록이 시작된다. 

이미 동네 일상을 통해 이들에게 무언가 닥칠 것 같다는 예상과 그것이 철거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예상은 하게 된다. 그런데 내 뒤통수에 소름을 끼치게 한 것은 감독이 카메라로 담은 일상에 대한 이미지와 마치 기계음 같고 노이즈 같은 사운드의 조합. 그것은 불협화음 같지만 썩 듣기 싫지 않은 화음이었다. 
폐허가 된 집 방문이 바람에 닫혔다 열렸다 하는 장면과 그 상황에서 들리는 마이크 잘 못 들었을 때 들리는 엠프 소리 같은 기계음과의 조화는 압권이었다. 

앞서 말한 40여 분 동안의 불편함을 무색하게 하고 반성하게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인디영화다운 시선과 새로운 시도였던 것이다. 툭하면 '다르다'와 '틀리다'에 대해 논리없고 근거없는 변을 털어놓던 내가 정작 새로운 시선과 틀에 박혀있지 않은 감각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불편해 했다. 이 무슨 구태의연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인가.
 
감독은 이미 영화제작 전부터 인터뷰는 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군 제대 후 마을에서 아무 생각없이 동네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검은 양복의 사내들을 보면서 이러다간 동네가 끝장나겠구나 싶어 시작을 했다는 영화 <호수길>. 

나무와 숲을 연상하게 한 영화라고 생각한 이유는 호수길이라는 동네 길을 소재로 분명 들려주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을텐데, 그 이웃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왜 생략했는지가 궁금하고 아쉬운점으로 남는다.
굳이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일상속에서 주고 받는 대화만으로도 그들이 어떤 생각과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는 지 들여다 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
 100여 명 넘는 관객중 현장음 없는 영상만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듣고 해석할 수 있었던 관객이 얼마나 되었을 지도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재훈 감독은 어린 나이에  자신의 작품을 대형 스크린에 걸고 많은 관객앞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관객을 강요하려 하지도 않았고, 변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는 밤 하늘 창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동네에 지팡이를 들고 쉬엄쉬엄 걷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아름다워 했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사랑했던 외로운 소년인 것 같았다.  

그 소년이 이야기하는 무언의 메세지 독립영화 <호수길>이었습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세상의 꼴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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