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13일, 자정을 갓 넘긴 시각. 경복궁 광화문 앞,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고요한 밤. 한 청년이 홀로 깃발을 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깃발이 휘날릴 때마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광장을 가득 채웠다. 마치 오래전 이곳을 지키던 수문장의 깃발처럼.

문득 떠올랐다. 우리는 깃발을 단순한 상징으로 바라본다. 하나의 주장, 하나의 신념, 혹은 하나의 목소리. 그러나 매 집회마다 다양한 색과 문양으로 나부끼는 깃발들은 단순한 주장의 도구가 아니라, 일종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 시대, 경복궁의 수문장은 왕과 궁궐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다. 그들은 성벽과 문을 지키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질서를 유지했다. 그들의 깃발은 왕권의 상징이자, 경계의 표시였다. 그 깃발이 바람에 휘날릴 때, 사람들은 그들이 서 있는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도 깃발이 나부낀다. MZ세대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 깃발을 흔들며 자신의 신념을 외친다. 민주주의, 평등, 자유, 권리. 시대는 변했지만, 깃발을 든 이들의 역할은 어쩌면 수문장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서 있다.
과거의 수문장은 주어진 명령을 따라 움직였지만, 오늘날의 파수꾼들은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깃발을 든다. 그들은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변화란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속에서 만들어진다. 수문장이 궁궐을 지켰듯, 이들은 시대의 가치를 지키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간다.
자정을 넘긴 광화문의 깃발, 그리고 조선의 수문장이 들었던 깃발. 그 사이에 놓인 수백 년의 시간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다. 깃발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의지다. 그 밤, 청년이 홀로 깃발을 들고 서 있던 모습이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는 무엇을 지키고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위 글은 2025년 3월 13일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을 보고 있다가 스친 꼴찌PD의 짧은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