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유튜브를 통해 윤석열 씨가 곽종근 사령관을 직접 심문하는 장면을 보면서 스친 짧은 생각.
우선은 변호인에 대한 신뢰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름 이름 있는 법무법인에 속해 있는 거물급 변호인들일 텐데, 그 많은 변호인들을 옆에 두고 직접 유도 심문에 나섰던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오너리스크' 단어가 떠올랐다.
우선, 오너리스크에 대해 ChatGPT에게 물었다.
‘오너리스크(owner risk)’는 단어 자체는 경제·경영 용어지만,
철학적으로 접근하면 “권력과 인간의 불완전성”이라는 주제를 품고 있죠.
바로 이어서 물었다.
Q. 오너가 조직원에 대한 신뢰가 없고, 본인이 다 해야 한다는 강박도 오너리스크에 해당 하지 않을까요?
ChatGPT는 이렇게 답했다.
정확히 짚으셨어요.
그건 “심리적 오너리스크” 혹은 **“내면적 리스크”**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오너리스크는 도덕적 일탈이나 법적 문제를 떠올리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것의 뿌리는 “신뢰 결핍”과 “통제 강박”이에요.
이 현상을 조금 더 철학적으로 풀면 세 가지 층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통제 환상(Control Illusion)의 함정
오너가 모든 걸 직접 챙겨야 안심되는 건,
사실상 “세상은 나를 배신할 것이다”라는 무의식이 전제된 사고예요.
그래서 신뢰 대신 통제를 선택하죠.
결국 조직의 자율성은 사라지고, 창의는 공포로 대체됩니다.
2. ‘위임’에 대한 불신은 곧 자기 불신
신뢰란 상대를 믿는 동시에 ‘내가 맡길 수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의 표현이기도 해요.
즉, 위임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불신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자신이 만든 시스템과 판단을 믿지 못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은 자존감이 아니라 불안의 언어입니다.
3. 심리적 리스크가 구조적 리스크로 확산
이런 오너의 성향은 곧 의사결정 병목을 낳고,
조직원들은 **“어차피 결정은 위에서 나와”**라는 학습된 무력감에 빠집니다.
결국 유능한 인재는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리스크를 피하려는 방관자가 되죠.
그때부터 조직은 ‘성장하는 유기체’에서 ‘오너의 그림자’로 변질됩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이건 ‘신의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려는 인간의 불안’이에요.
“모든 걸 내가 통제해야만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강박은
결국 자신을 신뢰 불가능한 신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상 설명을 듣고, 난 한동훈 과의 관계와 오너리스크의 연결을 짚었다. 그리고, 일련의 내용을 블로그 기사 용으로 부탁했다.
한동훈과의 어긋남 — 충성 관계의 붕괴
윤석열과 한동훈의 관계는 제도적 신뢰가 아니라 심리적 연합체였다.
‘같은 세계관’으로 묶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한동훈이 독자적 행보를 보이면서 ‘불신’으로 전환됐다.
이는 배신이 아니라 통제 실패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그 결과, 정부 내부에서는
- 외부와의 단절,
- 충성의 강화,
- 비판의 배제,
- 냉소의 확산
이라는 오너리스크의 순환 구조가 완성되었다.
🔍 4. 권력자의 불안이 국가 시스템으로 전이될 때
철학적으로 말하면, 윤석열 정부의 리스크는 ‘도덕적’이 아니라 존재론적이다.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해야만 세상이 돌아간다”는 사고가
제도적 위임과 집단 지성을 압도한 것이다.
그 결과, 국가는 한 개인의 심리 구조를 복제하는 불신의 시스템으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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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와의 대화 중에 내 관점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그는 법과 원칙을 말하지만, 실제 작동 방식은
법이 아니라 자기 판단에 대한 절대적 신뢰였죠.
결국 그 확신이 강해질수록 주변은 위축되고,
조직 전체가 한 사람의 심리 구조를 복제하는 집단으로 변했습니다.
그게 바로 정치판의 오너리스크 —
“권력자의 불안이 국가 시스템으로 전이된 상태”입니다.
글을 마무리 하면서 짧은 생각 정리!
윤석열의 계엄은 절대 계몽이 될 수 없다.
계엄은 공포로 질서를 세우지만, 계몽은 신뢰로 질서를 만든다.
그는 지난 3년간 축적된 오너리스크 속에서 통제를 돌파구로 삼았다.
곽종근 사령관을 심문하는 장면은 그 선택의 종착지였다.
권력의 민낯, 인간의 불안을 끝까지 확인한 순간이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그 한마디에 혹해 그의 기개를 존중했던 시기가 있었다.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그는 사람과 관계하지 않았다.
사람을 통제했고,
정작 자기 불안에게 통제당해 왔던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