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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무연의 마지막 자리에 따뜻한 시민이 있었다

꼴P 2025. 11. 1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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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30분,서울의 한 작은 예식장에서 무연고 사망자 추모식이 시작됐다. 시작 직전, 백발의 한 어르신이 편한 츄리닝 차림으로 들어와 육포 두 봉지를 단상 위에 올려두었다.

영정도, 영정도 없는 제단 위에 놓인 그 육포가 오늘의 헌화였다.

집례자는 왕릉과 종묘 이야기를 꺼내며 죽음 앞에서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예(禮)’를 말했다. 그리고 이번 달, 무연고 사망자가 150명이라 전했다. 그중 98명은 가족이 인계를 거부한 이들이었다. 숫자는 단순한 통계였지만, 그 말은 곧 가족이라는 제도의 복잡한 균열을 드러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가족이란 피로 맺은 관계일까, 아니면 끝까지 기억하려는 의지일까.

 

이날의 추모식에는 종교의 경계도 없었다. 명동성당 교우들이 기도문을 읊는 사이,
승복을 입은 스님이 차를 올리고 묵념을 올렸다. 죽은 이를 위한 의식 앞에서
기도와 차, 예배와 스님의 합장은 모두 위로라는 이름의 같은 울림이었다.

그리고, 그 조용한 침묵 위에 한 사람이 노래를 올렸다.


늘 저항의 자리에서 노래로 말을 해온 사람,
민중가요 가수 손현숙 님이었다.
그는 故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을 불렀다.
지난달에는 마로니에 광장에서
세월호 리본을 나누고 ‘기억의 공간’ 존치를 외쳐온
안계섭 님이 故 김민기의 *〈친구〉*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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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시민들이 헌다(獻茶)하는 시간, 그의 노래가 잔잔히 흘렀다. 노래의 힘은 저항이면서, 동시에 위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술 대신 차를 올리고, 마음을 나누며 조용히 자리를 마쳤다. 누군가의 마지막 앞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함께 있음’의 의미를 되새겼다. 외로운 영혼들의 마지막을 함께하려는 마음의 온도. 그리고 노래란, 그 마음의 온도를 되살리는 인간의 마지막 언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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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정리하며

그날의 제단 앞에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지만 낯선 시민들이 자리를 채웠다. 그들은 이름 모를 이의 죽음을 위해 기도문을 읽고, 차를 올리고, 노래를 들었다. 세상과의 인연이 끊긴 사람들을 위한 시민들의 추모. 그날 그 공간에서, ‘무연고’란 단어는 씁쓸했지만,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 기억하려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시민이라는 또 다른 가족의 울림이었다.

느낌 있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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