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26일 오전 10시, 인제 산촌민속박물관에서 산양 사진전 ‘야생의 증언’ 설치가 시작됐다. 한국DMZ평화생명동산 황호섭 사무국장, '산양을 사랑하는 인제 사람들',인제군 RCE센터, 설악금강서화마을 직원들이 합류해 70여 점의 사진과 대형 현수막까지 약 100점 규모의 전시물을 배치했다. 산양 단독으로는 사실상 국내 최대 규모 전시로 보인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과 '산양을 사랑하는 인제 사람들' 그리고, 인제군민이 기록해온 산양의 생존 현실이다. 2023년부터 산양 보존 활동을 이어온 이이자희 정책팀장은 “산양 떼죽음 현장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현장을 모니터링해왔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대응을 이유로 DMZ인접 지역에 설치된 3,000km의 철조망 울타리였다.

울타리는 산양의 이동을 차단했고, 뿔이 철조망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해 폐사한 개체, 이동이 가로막혀 먹이를 찾지 못해 아사한 개체, 출입문이 열렸다 닫히는 과정에서 도로에 갇혀 로드킬 당한 개체로까지 이어졌다. 이이자희 팀장은 “우리가 촬영한 사진 중 울타리에 갇힌 장면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전시 현수막에는 강렬한 문구가 걸렸다.
“3,000km의 울타리, 거대한 무덤이 되다.”
“2024년 한 해, 1,058마리 산양 폐사. 최근 10년 전체 폐사의 73.1%.”
이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고통의 스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은 두 영역의 사진 흐름이 교차된다.
인제 지역 주민 사진가들과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관계자들이 기록한 사진은 산양 가족의 표정, 돌봄과 일상, 비교적 평화로운 장면이 많다. 반면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이 기록한 사진은 도로, 울타리, 사고 지점, 생존 환경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이 두 흐름이 한 전시장에서 만나며 ‘생명의 평온함’과 ‘인위적 환경의 위협’이라는 대비가 관람객에게 강렬하게 전달된다.

현장에서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관계자는 “산양의 주름 개수를 반으로 나누면 대략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는 현장 경험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또 “야생 산양은 거의 한 번에 한 마리만 낳고, 두 마리 이상을 낳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해 산양의 취약한 번식 구조를 알려주었다.
보전 체계 또한 소개됐다. 다친 산양이나 구조된 새끼는 학습장에서 보호된다. 회복 후에는 적응 훈련장에서 몇 달간 야생 훈련을 받고, 일반인의 접근은 금지된다. 이후 연간 4~6개체 정도만 자연 방사된다. 사족보행 동물의 특성상 배가 차가운 바닥에 닿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전문가의 설명도 있었다. 울타리에 갇혀 장시간 차가운 지면에 눕게 되는 상황은 산양에게 치명적이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들은 희망적인 뉴스도 있었다. 올해 초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했던 산양 쉼터가 매우 좋은 효과를 보이며, 보전원에서도 해당 모델을 참고해 20개 정도 추가 설치할 계획을 밝혔다. 주민의 작은 행동이 국립 정책으로 확산되는 긍정적 변화다.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적은 ‘용어의 문제’였다.
이이자희 팀장은 “산양이 죽으면 보고서에는 ‘멸실’이라고 적힌다. 하지만 멸실은 물건·기록물을 잃어버릴 때 쓰는 표현”이라며, 살아 있는 생명에게는 ‘폐사’라는 일반적 생태 용어를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생명 존중의 감각을 다시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산양 다큐 사진 기록전, '야생의 증언'은 주민·기관·시민단체가 함께 만든 자리였고, 곳곳에서 “산양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을 지키는 일”이라는 공감이 오갔다.
전시는 기록이자 경고이며, 동시에 공존을 위한 행동 요청이다.

이번 제작노트는 산양이 겪는 현실,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기록이 만들어낸 변화를 담기 위해 정리했다.
이 전시는 단순한 사진전이 아니라, 야생의 목소리를 사람에게 전달하는 증언의 공간이다.
글/ 사진 ⓒ 꼴찌닷컴
우수한 꼴찌PD (kkolzzip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