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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로 버틴 방송생활 10년!

꼴P 2010. 10. 3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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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2일 대방동 어느 녹음 사무실에서의 면접. 다리를 꼬고 앉아 촌에서 올라온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던 키 작은 녹음기사는 내게 짧은 한 마디를 건넸다.

-"일 열심히 할 수 있겠어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됐지 뭐..."

내가 처음으로 사회에서 본 면접이었다.


                                 ▲1998년 MBC 예능프로 테마게임 스탭으로 일하던 당시


그 날 오후 난 생 처음 여의도에 있는 SBS방송국을 구경했다. 그 당시 면접 본 회사에서 아침드라마 '오장군' 동시녹음을  맡고 있었고, 그 날 이후 내 업무는 동시녹음 라인을 정리하는 라인맨 업무였다. 복학 전까지 용돈 벌 겸 시작한 사회생활은 나에게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TV로만 보던 연예인들을 코 앞에서 보는 꿈 같은 현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연예인도 별 차이없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방송과 첫 인연을 맺고 97년 부터는 배우 권해효님이 진행하는 예능프로그램 <환상여행> 프로의 연출스탭으로 일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편집을 배우고 싶어서 편집실을 기웃거렸는데, FD선배들이

"네 까짓게 무슨 편집이야. 현장에서 사람들이나 조용히 시키고 소품이나 잘 챙겨!"


라며 단박에 부탁을 거절했다. 그 당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복학하면서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공부는 또 하기 싫어했던 것 같다. 다만, 관심분야의 영상 관련 수업은 열심히 들었다. 졸업 후...
 
2000년 SBS교양국에서 FD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문의 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코너를 연출할 수는 PD자격이 주어진다는 말에 바로 이력서를 제출했다. 이력서에 적을 것이라곤 영상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예능프로그램 스탶으로 일 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코너 연출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촌놈의 열정을 인정해주셨는지 바로 다음 날 부터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처음 맡은 업무는 토요일 아침 방송되는 모닝와이드 프로그램 중 한 주간의 연예소식을 브리핑 하는 코너에 소개될 신문을 보드판에 붙이는 일이었다. 새벽 5시에 세트로 가서 풀로 신문을 붙이는데 삐딱하거나 순서가 틀리면 혼나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교양FD와는 좀 거리가 먼 듯 했지만, 첫 술에 배 부를리 없으니 꾹 참고 일 할 수 밖에 없었다.  

MBC에서 연예인들 의상 및 소품을 챙기던 일을 했던지라 SBS에서 FD로서 오랜 시간을  소품정리나 신문붙이는 일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일을 배웠고, 퇴근도 모른채 심지어 방송국에서 잠이 들 정도로 열심히 일을 배웠다.

그리고 2001년 6월, 1년이 채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그 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연중기획으로 방송하는 특집 모금방송에서 일하게 됐는데, VCR을 하나만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차장님께 직접 부탁을 드렸다. 결손 가족을 위한 특집방송에 필요한 VCR 제작 이었다. 첫 연출작이라 부담도 많이 됐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에는 겁이 없었던 것 같다. '잘 못만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보다 '뭐든지 잘 할 거야' 라고 되뇌였고, 현장에 나가서도 안좋은 머리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상황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첫 기회를 잡아 무사히 방송을 마치고 정식으로 아침 방송의 한 코너를 연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학교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상을 받게 되었다.


VJ 우수작품상. 이 상은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가득했던 내게 용암처럼 뜨거운 열정을 간직하고 분출할 수 있게 한 촉진제였던 것 같다. 피그말리온 법칙처럼 잘한다, 잘한다! 하면 정말 잘하는 줄 알고 겁없이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발냄새 지독할 정도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보람과 성취감에 젖어...

그런데 연출 5~6년차 정도 되었을 때 원인모를 방송에 대한 불안과 자신감 상실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방송국 내부에서 근무했던 것이 아니라, 외주 제작사 PD로 일할 때였는데, 온실속에서 자란 화초였을까... 그 때부터 방송이 두렵기 시작했던 것 같다.
 

                                                                          ▲ 2007년 3월 한 달간 도쿄 조선학교 촬영 당시

2007년 한 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배우고 싶다고 SBS스페셜 팀에 합류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난 연출을 회피하기 위해 조연출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 연출로 받는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이 심했던 시기에 촬영과 편집만 하고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회피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같았다. 



2008년에 다시 휴먼코너 프로그램 연출을 맡아 다시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방송을 통해 전하고, 2009년 2010년은 아프리카 출장을 통해 기아로 고통받는 전 세계 아이들의 처참한 현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10년 이란 세월이 흘렀다. 
 
방송연출에 자신감을 상실했고, 이제 다른 길을 찾아보고 있었다. 다른 길도 아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유일하게 간직한 기술은 촬영, 편집뿐이다. 그리고 맞춤법 엉망이지만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 

이제 정말 오래 전부터 기획했던 일에 올인 해야겠다는 다짐과 결심이 섰다. 
하지만, 또 닥칠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지는 미지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될 것 같다. 

내일이면 어제 가 될 오늘. 그렇게 오늘 하루 하루에 충실하고 정진하다보면
내가 꿈꾸고 기획한 작업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또 새롭게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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