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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견장에서 결심한 한 아이의 꿈

꼴P 2010. 11. 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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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구경꺼리 중 하나가 싸움구경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적으로 저장되어 있는 폭력본능 때문일까요? 내가 하는 싸움은 고통이 따라 싫지만, 남이 하는 싸움은 즐겨보는 심리. 제가 K-1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심리일까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니 모든 사람이 싸움구경을 좋아할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30초 상상으로 만드는 이야기 그 두번째 이야기는 개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싸우는 투견장에서 한 아이가 꾼 장래의 꿈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미스테리 한 시그널 음악이 흐르며...)
이 이야기는 실화일 수도 지어낸 거짓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30초 상상으로 이야기 만들기 지난 포스팅
#1 [상상놀이] 인형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면...


80년대 중반, 울산의 모 해수욕장에서는 가끔 투견대회가 열렸었지요. 지금과는 달리 개들을 보호하기 위한 뚜렷한 룰도, 베팅금액의 제한 같은 것도 없을 때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우연찮게 그 자리에 비집고 앉았을 때는 이미 철창 속에서 도사견들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짖어대고, 진행자는 낚시조끼 곳곳에 지폐를 거두어 꽂으면서 배당율을 외치는 한편, 군중들은 서서히 웅성거리면서 (두 마리의 개와 같은) 흥분을 고조시키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송아지만한 개들과 흥분한 어른들의 다리 사이에서 겁을 먹습니다. 그래도 자리를 떠나기에는 호기심이 놓아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투견장의 분위기는 이것이 어른의 세계이며 이대로 도망치면 넌 남자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해안가에서 풍기는 소금 냄새와 관중들의 땀냄새가 뒤범벅이 됩니다. 일제히 일어서서 주먹을 을러대며 소리지르는 어른들의 고함소리가 묘한 냄새와 뒤섞이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칩니다.
 
저마다 베팅한 개를 윽박지르기 시작합니다. 그들을 보면서 아이는 빈 철창 바로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저렇게 개들을 윽박지르면 소만한 개들이 사람에게 달려들지나 않을까 초조해집니다.

개들은 붉은 석양 아래에서 파란 안광을 뿜습니다.

그런데 양볼이 축 처진 주둥이는 침착하게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 모습에 넋을 잃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투견장 개싸움에서는 짖거나 이를 드러내면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두 마리 투견의 이름은 몽고메리와 투라였습니다. 각각 암놈과 숫놈인 중형급 도사견으로, 그 동네 판에서는 그다지 이름없는 놈들이라고 했습니다.

서로 늘어진 귀와 볼과 목 언저리를 한꺼번에 물고 상대의 고개를 찍어누르려고 힘을 주는 상황에서 몽고메리의 탁월함이 발휘됩니다.
물고 있던 목을 놓자마자 투라의 왼쪽 앞발을 물고 몸을 오른쪽으로 비틀어 투라를 모래바닥에 넘어뜨리고 그 위를 덮친 것입니다. 몸무게가 50킬로그램 이상인 중형견들은 한 번 넘어지면 재빠르게 일어나기가 힘들지요.

사람들이 한꺼번에 흥분과 놀라움을 공중에 찔러던지는 가운데 두 마리 개의 드잡이는 곧 끝이 납니다. 목이 상할 것을 염려한 투라의 주인이 뛰어들어 개들을 떼어놓음으로써 패배를 선언한 것입니다.

소년은 돈을 잃고 딴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나옵니다.

개들의 머리와 목줄기에서 흘러나온 피에 조개 분말이 섞인 모래가 덕지덕지 붙어 번득이는 게 아이의 눈에서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누렇고 더러운 개가 끝까지 적에게서 눈을 떼지도 않고, 비명소리 하나 내지 않는 것이 신기하고 멋져보이기도 했습니다.

끔찍한 의젓함이었지요.

그때 돈을 잃은 듯한 누군가의 욕설 섞인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개xx, 지 아들한테 너무하는 거 아냐? 하하"

아이는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아들을 문 개가 너무한지, 아들과 엄마를 싸움붙이고 돈을 거는 사람들이 너무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선택합니다.
수의사가 되어 개가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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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앞으로 저와 함께 생각하는 꼴찌의 미디어 놀이터에서 함께 놀게 될 
창작하는 꼴찌님의 글입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후배인데 항상 대인기피증처럼 골방에 묻혀 망상에 젖길래 함께 놀자고 했습니다.

전 아들을 문 개가 너무한지, 아들과 엄마를 싸움붙이고 돈을 거는 사람들이 너무한지라는 글에서 잠시 생각하게끔 하더군요. 

30초 상상으로 이야기 만들기 지난 포스팅
#1 [상상놀이] 인형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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