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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사유> 당신이 술을 마시는 이유? 술을 부르는 책 한권

꼴P 2010. 12. 27.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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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술을 입에 댄 시기(?)는 초등학교 시절 열 살때 무렵입니다. 술에 취하셨다하면 보름씩 장기간 밥 대신 술을 드시던 할아버지가 신기하기도 두렵기도 해 도대체 무슨 맛으로 저렇게 오랜 시간 술을 드실까 궁금해 할아버지 몰래 확인을 했던거죠. 호기심에 입에 댔다가 물로 입가심하며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기억.

그리고 몇 해 지나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집에서 그 다짐을 어기며 소주 석 잔에 취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하늘을 경험했죠. 본격적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친구들과 치맥을 존경(?)하며, 대학때는 낮술을 취미삼아 취중진담(?)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0년 넘게 술은 제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실연을 당하면 위로해주는 친구였고, 괴로울 땐 괴로움을 삭히는 방편이요, 즐거울 땐 그 즐거움을 배로 함께하는 A급 친구였습니다. 

그런 특급 친구인 술을 2010년 9월 13일 일어난 사건 이후로 멀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한 권의 책을 선물받아 읽으면서 또 다시 멀리 할 수 없는 친구임을 확인했습니다.   
   

음주사유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김은하 (pageone(페이지원),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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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인 김은하, 박기원이라는 두 작가 분께서 공동 집필한 책 <음주사유>는 제목 그대로 술에 관한 책입니다. 우선 제목이 재밌습니다.


私有 : 술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다. 
思惟 : 음주에 대해 두루 생각하다.
事由 : 술을 마시는 까닭 

책 표지에 풀어놓은 해석처럼 술에 대한 예찬과 더불어 술을 마시는 까닭에 대한 고찰(?)을 남녀 작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과 픽션을 가미한 에세이집이라고 하면 짧은 소개가 될 것 같습니다.  

차례를 보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필름(기억)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더군요.

1부 끊어진 필름 / 2부 누구의 추억 / 3부 잃어버린 아우라 / 4부 타인의 취향


<술>이라는 공통 분모를 두고 남,녀 작가가 함께 엮은 단편 에세이 내용은 꼴찌처럼 집중력 약하고 머리나쁜 독자들에게 통일되지 않은 톤의 글들이 자칫 읽기 곤란하고 헷갈린다는 것이 단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처럼 애주가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담겨있었습니다. 공감의 대목은 아무래도 필름 끊김 현상이겠죠.

술을 적당히 마시게 되면 '취기'가 돈다고 하다.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명정酩酊' 이라 부른다. 곧 만취의 상태다. 명정, 소리로는 참 맑고 고즈넉한데, 뜻으로는 이미 갈 데까지 갔다는 것이다. (중략) 

그것은 '불랙아웃black out ' 현상이다. 기억을 저장하는 측두엽과, 기억을 만드는 해마, 다시 불러내는 전두엽의 전두전야 등 뇌의 핵심 기관들이 알코올에 마비되어 일으키는 일종의 입력 - 저장 - 복기 오류에 해당한다.
                                                                                                             p68~69 내용 中

작가들은 책을 집필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고, 또 얼마나 많은 필름들을 잘라내며 편집했을까 궁금했습니다. 박기원 작가는 책을 출간해 본 경험이 없는 일반 회사원이라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술에 관한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첫 경험때문이라서 그런지 책 내용에는 많은 주석이 달려있고, 인용문구가 많습니다. 술에 관련된 에피소드와 더불어 많은 책 내용의 좋은 문구가 함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이한 점입니다. 하나 더,



'멍은하'라는 닉네임으로 김은하 작가는 책 중간 중간에 삽화를 삽입했는데요. 그 중 책을 읽은 독자나 애주가들이 100% 공감할만한 사자성어가 있었습니다.

금상첨화(錦上添花) : 술을 마시면서... 또 술 약속을 하는 것!
설상가상(雪上加霜) : 술에서 깨어보니 지갑이 없는데... 핸드폰까지 없는 것!
이열치열(以熱治熱) : 숙취엔... 맥주!
                                                                          p161~162

사실, 술로 말미암아 생긴 에피소드로 책을 내라면 주력 20년의 꼴찌가 동갑내기인 두 작가분들보다 더 재미있는 일상의 기억을 에피소드로 엮을 자신이 있을 정도로 말 많고 탈 많았던 일화가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꼴찌가 2010년 9월 13일 이후로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하던 좋은 친구를 멀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책 속에도 '주사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가 있지만, 주사의 종류가 참 사람마다 각양각색입니다. 취할수록 귀엽고 친근감가는 형이 있는 반면, 한 말 또하고 또하는 수다형, 신사처럼 매너좋던 사람이 갑자기 환골탈퇴해 UFC선수가 되는 브랑카형, 살아야 할 날이 주구장창 많이 남았는데 술만 취하면 '죽어버릴거야'를 외치는 불나방형, 술만 취하면 노래방 찾고 함께가면 마이크 안놓고 독무대하는 리사이틀 형, 갑자기 대성통곡하며 세상 고민 다 안고 살아가는 찌질이형 등 등 수많은 캐릭터를 제조해 내는 마력을 가진 것이 바로 술입니다.


애주 9단이었던 꼴찌는 어떤 주사가 있었을까요? 지금도 폭탄주는 절대 사양하려고 노력하는데요. 폭탄주만 마시면 폭탄맞은 미친짓을 하는거죠. 생각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마치 빙의 증세인 양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또 다른 제모습이겠지요. 정말 특이한점은 아무리 만취해도 귀소본능은 철저하다는 것인데, 문제는 집에 들어와서 천사같은 아내에게 시비를 걸고 떼를 쓰는 진상짓을 했던겁니다. 

반복되는 주사로 우리 부부는 심각한 위기에까지 놓여졌었습니다. 그 마지막 사건이 2010년 9.13 술또라이(?) 사건이었죠. 전 그 후로 아내에게 술을 끊겠다는 각서를 썼습니다. 하지만, 주력 20년의 꼴찌가 술을 끊는 것은 마약이나 담배를 끊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입니다. 아내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해주고 있지만 꼴찌는 강한 의지로 9월 13일 이후, 단 한번도 정신줄을 놓은 적이 없습니다. 
 


그 비결은 주계부를 작성하는 것과 술 마시는 자리에서 술보다 물을 많이 마신다는 점입니다. 주계부는 그 날 이후부터 술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와 빙의(?)증상을 없애기 위한 개인적인 방법입니다. 술자리가 있었던 날은 집에 들어와 술을 마신 주량 및 그날 있었던 일을 간단히 메모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주계부를 작성하기 위해서라도 술자리에서 술보다 물을 더 많이 마셨습니다. 물을 많이 마시면 술에 덜 취하는 과학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겠지만, 경험상으로는 그 후로 술에 만취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물론, 그 만큼 많은 양의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술자리에서 물을 많이 마실 것을 추천합니다.

벌써 10년 전부터 술에 관한 술에 관한 재미있는 컨텐츠를 만들어보고자 기획했던 꼴찌에게 '술'은 여전히 좋은 친구이며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절대 조심해야 할 사항을 책의 내용으로 인용하며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술은 세상사 모든 것의 약점을 대충은 가려줄 수 있다는 지고지순한, 미련한 믿음'

며칠 남지 않은 2010년 한 해 많은 송년회 모임에서 술자리를 갖게 될 것입니다. 술은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고,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주듯 지난 한 해동안의 좋고 나쁜 일들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하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이 좋은 친구를 오래두고 함께 하자면 이 술이라는 친구와도 연애하듯 밀고 당기며 기분좋게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며 취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글을 정리하며 정말 술 생각이 나게 하는 책. 한번쯤은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끔 하는 책 <음주사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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