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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없는 길고양이의 맑은 눈동자

꼴P 2011. 10.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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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아파트 주변에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빈 캔에 음식을 담아 길에 놓았고, 길고양이는 지나치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배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 담배를 피우려고 1층에 내려갔다가 엘리베이터 복도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에도 밝힌바 있지만, 고양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어렸을 적 시장통에 있던 낡은 기왓집에서 밤마다 울어대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이 울음소리와 똑같아 듣기 거북했고, 늦은 밤 평상 마루에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길고양이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이 고양이 발톱을 먹으면 사람으로 된다는 내용을 보며 떨었던 기억까지. 

고양이는 제게 그리 반가운 동물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우리집 바로 앞에서 만난 길고양이는 사람을 경계하는 대부분의 길고양이와 달리 저를 겁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랑이 사이를 왔다갔다 할 정도였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길고양이는 근처에 그대로 앉아있었더군요. 심심한건지 배가 고픈건지 내 앞을 왔다갔다하며 꼬리를 치켜 세우기도 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딸아이 어린이집 데려다 주면서 만났던 길고양이들은 대부분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경계하는듯 했는데, 이 녀석의 눈망울은 너무나 맑았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길고양이를 처음 만나고 난 후 집에서 DSLR을 챙겨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촬영한 동영상을 나름 정성들여 편집한 영상입니다. 이렇게 눈망울이 맑은 길고양이는 처음이라 간만에 느낌 잡고 편집했으니 감상 부탁드립니다. 

3분 영상입니다.
 
겁없는 길고양이의 맑은 눈동자  


유투브 영상보기 http://youtu.be/R6CYvSv1C3Y




영상 속 피아노 음원은 트위터에서 만난 작곡가 친구 박영민님께서 영상 창작에 사용하라며 작곡해서 선물해 주신 음원입니다.

Music by 박영민 (
@ATRpym )



 낯선 카메라를 보고 반응을 보일법도 했는데, 길고양이는 난간에 웅크리고 앉아 얌전하게 있었습니다. 야옹 거리는 길고양이의 눈망울이 고양이에 대한 암울한 기억과 트라우마를 단박에 지워버릴 정도였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카메라의 특수기능인 나이트버젼으로 촬영한 사진인데, 고양이의 눈을 보면 전혀 경계의 빛을 볼 수 없습니다. 딸을 키우는 아빠이기에 한편으론 늦은 밤에 고양이를 보고 아이가 놀랠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앞섰습니다. 그럼에도 길고양이의 맑은 눈은 겁 많은 딸에 대한 걱정보다 길고양이가 왜 이 자리에서 울고 있는지, 이런저런 해결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아쉽더군요.




   

길고양이가 사람에 대해 경계가 없고, 심지어 내 앞으로까지 다가와 꼬리를 흔드는 행동을 보면서 이 고양이가 사람을 경계하지 않은 이유는 사람과 함께 집에서 생활해왔던 고양이였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은 길을 잃었거나, 버려졌거나... 

길고양이에 대해서 평소 많은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고등학생을 만나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과 길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횡포에 대해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동네 길고양이를 보살펴오던 그 학생은 사람들에게 바라는 바가 크지 않았습니다. 밥을 챙겨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길에 고양이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다 비둘기를 보듯이 그냥 고양이구나 하고 지켜봤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학생은 꾸준히 길고양이들의 아빠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전에 고양이 밥 주는 모습을 촬영하고 인터뷰 하기로 약속했었는데, 요즘 제가 학생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예전에 촬영 편집한 동영상으로 대신 합니다.

당시 동영상






이 학생은 길고양이를 돌봐준 선행으로 학교에서 구청장 시민상을 수여했다고 합니다. 고3 수험생임에도 하루도 거르지않고 자신의 용돈을 모아 길고양이의 사료를 충당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길고양이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많은 학생들도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글을 마치며,
제가 집 앞에서 만났던 길고양이를 며칠 째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사람들이 돌을 던지거나 해코지하면 분명 그 맑던 고양이의 눈빛은 경계의 눈빛으로 변할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겁많고 나약한 동물도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겁없이 제 가랑이 사이를 헤집던 길고양이를 다시 만났을 때도 그 맑은 눈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고양이의 맑은 눈빛이 사람들에 의해서 날카롭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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