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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나도 카메라를 들테니 당신도 놓치 말게나!

꼴P 2011. 5. 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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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문자 호출이 있었다. 사무실로 놀러오라는 문자인데 작업할 게 남아 있어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지만 이 친구의 호출에는 이것 저것 재면 안된다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친구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저녁시간에 맞춰 갔는데 친구는 한참 편집에 바쁘다. 내 배꼽시계는 정각을 알리며 울기 바쁘다. 컴퓨터 편집에 빠져있는 친구는 내 배꼽시계의 울림이 들리지 않는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지난 번에도 불러놓고 한 시간을 기다리게 하더니 또 그런다. 




편집을 마쳤는가 싶더니 갑자기 옆에 앉아서 편집한 영상을 좀 봐달란다. 미칠 뻔 했다. 시계태엽을 감아서 귀에다 대고 들려줘야 솔직하고 거짓없는 내 위장을 달랠 것인가? 그런데 친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 봐줬다. 난 1시간짜리 다큐를 연출해 본 적도 없는데 다큐멘터리를 몇 편이나 연출한 친구가 나보고 좀 봐달란다. 

▲ KBS스페셜 <세상을 바꾸는 0.05% 힘> 제작 당시 두바이 공항에서 12시간 대기하면서 찰칵

" 친구야! 기억하는가?
피곤해 죽겠는데 촬영한 거 보자며, 왜 이렇게 촬영했냐며 피를 마르게 했던...

그래도 난 당신과의 추억을 잊지 못하네"


연출자는 그렇다.

빠져들면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일 때가 잦아 놓치는 부분도 많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도 생각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촬영장에서의 느낌을 전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내가 요즘 블로그를 통해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면서 내 느낌에만 빠져 방문하는 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고 있지는 않나 우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블로그는 매스미디어와는 달라서 조금 더 주관적이어야 하고 그럴 필요성도 있다.

 



방송장이는 어쩔 수 없나보다.

친구가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을 보니 또 가슴 안에서 뭔가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은 그 꿈틀거림을 블로그에 담고 싶다. 친구가 봐달라고 했으니 묵묵히 보고 있었는데, 사람의 감정을 화면으로 담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친구보다 내가 조금 더 낫고 경험이 많다.

친구는 논리에 강하고 난 감성에 강했다. 

그래서, 솔직하게 느낀대로 이야기했다. 방송 경력은 비슷했지만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데 내 잔소리가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력없는 내가 봐도 친구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냉철하게 느낀 바를 전달하다가 아이디어는 밥 먹고 술 먹어야 나온다고 전했다. 난 역시 잔머리의 대가다.


" 친구야! 고민은 하되 너무 길게 오래하지는 말게나!
나처럼 대머리 된다네..."



소주를 한 병 주문했다.

한 잔씩 들이키고나니 친구가 그 동안의 일들을 풀어 헤친다. 팀장을 하면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단다. 팀을 꾸려봤고, 팀을 해체 시켜봐서 안다. 사람과 함께 작업하고 사람을 관리 한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친구의 넋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모습이 낯설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 충만했고, 심하다 싶을 정도의 자뻑(?)이었던 친구였는데 표정이 어둡다. 한 달전에 몇 달 동안 촬영하고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된 것이 큰 상처였던 것 같다. 그 프로젝트의 무산으로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각자 제 갈 길을 갔다고 한다. 무섭고 냉정한 정글이다. 그런 면에서 블로그는 내게 피안처이기도 하다. 하지만 들여다 볼 수록 이 블로그스피어 또한 정글이다. 심지어 헐뜯기까지 한다. 

또 한 잔 들이켰다. 

나보고 사업 잘 되냐고 묻는다. 친구는 블로그 개념이 전혀 없다.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은 사업이 아니다. 콘텐츠 기획이다. 그가 방송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나는 블로그를 통해 전하겠다는 면에서 우리 둘은 비슷한 기획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방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다.

친구나 나 나 평생 카메라를 놓지 못할 방송장이다. 


" 친구야! 우리가 어찌 카메라를 놓을 수 있겠는가? 난 죽을 때까지 영상 작업하다 죽을 놈일세 "


마지막 잔이다. 

갑자기 친구가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학원원장 경력이 있던 친구는 고향에 내려가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도 작년 초에 귀향을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우린 방송이라는 마약에 길들여진 송충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솔잎이 나무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친구가 가끔씩 들어와서 흔적도 없이 훑어보고 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내가 그 친구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있어주지 못하고 12시 전 귀가하는 신데렐라가 될 수 밖에 없는 내 사정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친구는 아마 기억도 못할 영상을 하나 건넨다.

        

"친구야! 나도 조만간 카메라를 들고 들과 산을 날 뛸 거라네. 
우리 함께 다시 미친듯 날뛰는 들개가 되자고!" 
   

내 소중한 친구가 우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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