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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호선 검사녀 사건과 자리를 비운 장애인 활동보조인

꼴P 2011. 5. 16.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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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4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에 관한 1인 시위의 주인공, 배우 김여진 님에 대해 혹자는 오지랖 넓은 배우라 평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녀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이 오지랖 넓다고 답하기도 했는데요. 설령 그녀가 오지랖 넓은 여자라고 하더라도 

그녀는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요일(5월 15일) 두 가지 기억에 남을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트위터에 '무관심'과 '오지랖'에 대한 화두의 날이었다는 메세지를 남기기도 했는데요. 두 가지 사건을 정리합니다. 

 

 



어제 과천 어린이 대공원 나들이 가는 길에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2호선 지하철을 타고 4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사당으로 향하던 중 지하철 내에서 어느 여성의 화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한 손에는 작은 광주리를 든 시각장애인이 내 옆을 스쳐지나자마자 들린 소리였는데요.

"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다 보이면서 지팡이는 왜 들고 다니는거지...시민들이 다 보는데서 당신은 날 농락한거야! "

하얀 브라우스를 입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시각장애인에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영화에 가끔 유머 소재로 등장하는 가짜 시각장애인이 실제로 지하철에 나타났는 줄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앞에서 여자가 화를 내고 있었기에 시각장애인이 여자를 추행했거나 실수를 했구나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도 50~60대 가까운 할아버지의 눈에는 장애가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여인의 원인 모를 분노는 계속 됐습니다.

그런데 계속 듣고 있다보니 여자의 분노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왜 앞이 보이는데 지팡이를 들고 다니냐고만 윽박지르는데, 만약 그 노인이 여자를 추행했거나 어떤 실수를 저지른 상황이었다면 시민이 여자의 편을 들었을텐데요. 지하철 안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 여자에게만 향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오지랖이 넓은 놈은 아니지만 모른 척하기도 그렇고, 나서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망설이던 찰나 
그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 한 마디가 저를 비롯한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 당신 나하고 같이 경찰서로 가. 나 검사야..."  

조심스런 표현이지만 많은 시민들앞에서 자신이 검사라고 말하는 그 여자는 자유롭고 독특한 뇌구조를 가진 듯 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검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하철 시각장애인은 어이없는 듯 여자에게 경찰서로 가자며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그 여자는 그 상황을 지켜보더니 나는 안갈테니 다시 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문은 닫히고 할아버지와 그 엉뚱녀와의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하철 내에서 구걸하는 시각장애인한테 농락당하지 말고 돈 주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민망했는지 그녀는 다른 칸으로 이동했고, 전 그 상황에서 왜 미리 말리거나 참견을 하지 않았을까 후회했습니다. 제가 그 상황을 해결해야 할 의무나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무관심이었습니다. 

 




과천 어린이 대공원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밝혔듯이 NIKON D5100 체험단에 선정돼서 설레는 맘으로 사진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는데요. 아내가 미리 약속한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먹는 동안 전 느낌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휠체어에 탄 사람은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보였고, 엄마인지 아내인지 모를 여자분이 물을 먹여주고 있었습니다. 30여 미터 떨어져 있었는데, 그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일단 먼저 촬영을 하고 난 후 허락을 받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물을 다 먹이고 나서는 빈 물통을 들고 어디론가 향했습니다. 저는 빈 통의 물을 채우러 가던가, 빈 통을 버리러 간다고 생각해서 기다렸다가 돌아오시면 사진을 보여드리고 블로그에 올려도 되는 지 허락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10분, 20분이 지나도 그 아주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태연하던 장애인도 30분이 되자 전동휠체어로 몇 미터 움직이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듯 했습니다. 


장애인에게 인사를하고 난 후 실례지만 물 먹여 주던 여인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장애인은 서툰 발음으로 '활동보조' 라고 했습니다. 활동보조인이라 함은 중증장애인의 신체활동, 가사 및 이동을 돕는 사람을 뜻하는데요. 서울특별시 장애인 홈페이지를 참조하자면,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 목적
신체적,정신적 이유로 원활한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증진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 정의
1급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을 파견하여 장애인의 이동보조, 일상생활지원, 신변처리지원, 가사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함
 
http://friend.seoul.go.kr/support/support_06_01.jsp?Depth=261
 
 
 
왜 여기 혼자 남아계시냐고 여쭤봤더니, 자신은 더워서 그 자리에 남아있겠다고했고 활동보조라는 분에게 공원을 둘러보고 오라고 했답니다.  그 장애인은 웃으면서 제게 가라는 뜻의 손짓을 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드는 생각은 아무리 장애인이 그렇게 하라고 했더라도 장애인을 혼자두고 30분 이상 자리를 비운 활동보조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정리하면서 확실히 반성을 하게 됩니다. 

배우 김여진 님을 비롯해 그 외 의식있고 개념있는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면 지하철에서 자칭 검사라 주장하는 여자와 시각장애인 사이에 일어난 일을 모른 척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장애인에게 상황 설명을 다 들어놓고도 후조치를 하지않고 아무일 없겠지, 활동보조인이 돌아오겠지 하면서 제 갈 길을 간 것도 상황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소중한 이웃분들은 제가 겪은 두 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셨을 지 궁금합니다.

점점 개인화 되어가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세상이 되어가는 지금도 누군가는 단수로 인해 물이 부족한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고 새벽녘에 현장에 도착해서 물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직접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지는 못할지라도 아닌 걸 보고 아니라고 말하고 행동할 줄 아는 양심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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