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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고맙고 늘 미안해...<자화상>

꼴P 2010. 11.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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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25일)오후 2시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중 존경하는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전 11시 경이었는데,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하셨다. 그런데, 목소리에 술냄새가 난다.

영화 시사회에 가야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알았다며 전화를 끊는데, 끊고 나서 기분이 썩 좋질않았다. 마치 화장실 다녀왔는데 잔변 남은 기분처럼... 
그날 겪었던 일들이 짧은 시나리오가 될 것 같다는 스쳐가는 생각에 정리한다.

내게 그 선배는 '친형님과도 같은 분이다' 라고 변함없이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다.

참 많은 신세를 졌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잊지 않고 챙겨주셨고, 그 후로 지금까지 사회생활에서도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분이다.그런데 전화상으로 풍기는 술냄새때문에 잠시 갈팡질팡 머리로 계산하는 것은 역시 나와 맞지를 않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하고  선배를 만나러 홍은동으로 향했다.
  
▲ 내 짧은 단상이 시작된 홍은동 어느 식당

술만 취하면 빙의 증상(?)이 일어나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블랙코메디 행동을 하는터라 절주한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한 이
몹쓸 빙의 증상이 있는 인물이 두 분 계시는데, 그 중 한 분이 내가 만날 선배님이었다. 또 다른 한 분은 매일 블로그를 통해 만나고 있다.^^

홍은동 근처 감자탕집에서 선배를 만났는데......처음이다.
선배의 눈가에 촉촉한 뭔가가 맺혀있었고,10년 동안 봐오면서 그런 얼굴을 본 건.....처음이다.

아이폰을 통해 풍겼던 술냄새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전 날 새벽까지 폭음을 하셨을테고 아침 해장삼아 날 부르셨으리라 생각하고 왔지만, 다른 여느 때 낮술자리와는 사뭇 달랐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 보고 싶은 후배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이 시간에 부르면 나와주는 후배가 있으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 고맙다"

사실, 현재 백수니까 나간 것 뿐이다.

웃으면서 코믹무드를 만들려는 선배와 낮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해들은 이야기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 지 모를 이야기였다. 내가 그 입장이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내에게 술 마시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썼는데, 낮술을 먹지 않겠다는 조항은 없었기에 몇 잔 마셨다.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할 꺼리가 있었기에 '뇌를 촉촉하게 하기 위해 마신 술은 보약이다!'라고 비열한 합리화로 자위하며 달콤하게 마셨다.
 
감자탕집에서 소주 3병을 비우고 선배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데, 또 다시 선배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3시 경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식당 아주머니의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다. 선배의 딸꾹질 신호와 함께 열평도 안되는 좁은 식당에서 난 스쳐가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단편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다. 

<자화상>

# 홍은동 어느 작은 식당

오후 3시. 식당 안에는 손님 한 명이 낮술을 마시고 있다. 제육볶음은 다 완성이 되었는데도 손이 가질 않아 말라있고, 소주는 이미 반 병이 비워진 상태. 테이블위에 물기가 묻어있는 큼지막한 풋고추와 쌈장. 술에 취해있는 40대 중년 남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고, 예순이 넘은 주인아주머니는 풋고추 꼭지를 다듬으며 흘낏 흘낏 안쓰러운 표정 반 짜증 섞인 표정 반으로 중년남을 쳐다본다. 그 때 한 남자 식당문을 열고 들어온다. 

경혁 : (반쯤 풀린 눈에서 의식을 차리려 애쓰며...하이파이브를 건넨다) 

"어...왔어!?~ 이리와... 앉아... 잘 지냈어? 보고 싶었다...

(수한은 술에 취해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지만, 짜증낼 수 없는 존재다. 애써 웃음 짓는다)

수한 : "잘 지내셨어요? 아... 이 시간에 소주에요? 벌써 많이 드신 것 같은데..."

경혁 : 시끄럽고 받아...
(술 잔 가득한 소주 아슬하게 넘친다) 
          이모! 여기 내가 정말 아끼는 후배. 영화감독이에요.

식당주인 : 어...그래요? TV에서 본 거 같네...
(수한 3년 째 백수고 TV출연 한 적 없다) 

식당주인은  풋고추 다듬으면서 홀서빙 아줌마와 속삭인다.

식당주인    : 한 동안 안보이더니 웬 또 낮술이야... 아휴 진상...
서빙아줌마 : 조금만 먹고 나갔으면 좋겠네...

(경혁 소근거림을 듣고도 모른 척 한다)

경혁 : 늘 고맙고 늘 미안해...
수한 :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둘이 건배... 후배의 잔에 있던 소주 넘쳐 손가락에도 묻고 흐른다 
잠깐, 말이 없는 선배와 후배)

경혁 : 난 참 마음공부한다는 놈이 왜 Let it be! 를 못하는 걸까... 
         그냥 맘에 안드는 새끼들은 아..그냥 저렇게 살다 가는 거겠지 하면 되는데, 
         왜 그걸 그냥 넘기지 못할까... 
(후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도 모른체 듣기만 하고 있다.)

경혁 : 수한아! 내가 아무리 잘못을 했더라도 그 새끼가 나한테 그러면 안되는거야...
(소주를 한 입에 털어넣는 경혁. 제육볶음 안주가 있는데도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는다. 갑자기 긴장을 풀고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다.좁은 식당안에 작은 TV에서는 사건 사고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대학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하고, 검사가 성접대를 받고...등) 
         
          이모! 여기 매운 고추 좀 줘요...

수한 :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묻지 않고 선배의 빈 잔에 술을 따른다.) ......

(식당아줌마 주방 한 켠에서 작고 매운 중국산 고추를 골라 큰 고추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큰고추와 중국산 고추가 비교되게 보인다)

경혁 : 난 참 행복한 놈이야... 이렇게 보고 싶다고 하면 나와주는 후배가 있고...
         (잠시 침묵)
         수한아! 붙잡고 울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한 줄 알아라...
         난 붙잡고 울 사람이 없잖아...
        
        내가 한 번은 딸 앞에서 운적이 있었는데... 딸내미가 참... 
        (다시 소주를 비운다) 
수한 : (듣고 있던 후배 따라서 소주 잔 비우고 술 잔 채우고 받는다) 

경혁 : 별일없지? 
수한 : 네...별일 없어요... 
경혁 : 붙잡고 울 사람이 있는게 행복한거야...

경혁은 어제 밤 10년 넘게 생사를 같이 했던 후배가 개업한 카페에서 술을 먹었다. 술에 취해 주변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었고, 오늘 아침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경혁 : 내가 설령 사람을 죽였어도... 그 새끼가 나한테 그러면 안돼.
           뭐? 나를 알게 된 게 창피해...? 나랑 지나온 시간들을 뭐...? 참 에이 씨~~

때마침 울리는 수한의 전화. 수한의 아내다.

수한 : 선배님 잠시만요...

식당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는다.

# 식당 앞
        
수한 : E( 어디야...?) 어... 선배랑 점심 먹고 있어...
         (선배 누군데...?) 경혁 선배...  

전화받고 있는 수한의 뒤로 한 남자 피던 담배를 길에 버리며 식당으로 들어간다. 

수한 : E(술 마시는 거 아니지?) 술 안먹어...
          (애 데리고 들어와...) ...... 
          (왜 말이 없어?) 어딘데? 집 아니야? ... 알았어... 

전화를 끊고 담배를 사러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수한. 2500원짜리 국산 담배.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 기계로 코드를 찍지 않고 2500원 받아서 자기 주머니로 챙겨 넣는다.  


# 식당 안 

술에 취한 경혁 손님에게 멱살이 잡혀 있다.

손님 : 술 처먹었으면 곱게 처먹지... 이 가게 혼자 전세냈어? 미친 새끼야!!!
경혁 : (멱살이 잡힌 체 풀린 눈으로 웃기만 한다.)

특공대 출신의 선배가 사고를 칠까 두려워 수한 빨리 말린다. 손님에게 사정하듯 사과를 하는 수한. 

수한 : 죄송합니다. 이거 놓고 얘기하세요.
손님 : 아...씨... 재수가 없을라니까 

손님 식당 문 열고 나가자마자 담배 물고 한 모금 피더니 화가 가시지 않는지 피던 담배 그냥 버린다. 나무옆에 작은 풀 사이로 떨어지는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 T.S 

# 식당 안 

경혁 : 미친새끼... 내가 노래 부르는데 왜 지가 지랄이야. 
식당아줌마 : 다른 손님도 생각해야지 그렇게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면 어떡해...
경혁 : 이모! 내가 시끄럽게 노래 불렀어? 시끄러운 노래가 아니잖아...
(뉴스에서는 계속 흉흉한 사건 사고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손님이 먹다 남은 밥과 찌개. 몇 숟가락 뜨지않아서 그대로 남은 김치찌개와 남은 밥 공기를 정리하는 식당아줌마. 남은 밥에는 김치국물이 묻어있다. 식탁을 정리하면서도 계속 술취한 경혁에게 잔소리를 한다. 
경혁은 꼬인 혀로 알아 듣지 못할 말을 흥얼거린다. 수한은 묵묵히 경혁을 쳐다보고 있다. 수한의 어깨뒤로 식당아줌마 쟁반에 음식을 들고 주방으로 향하며 경혁을 한 번 더 째려본다. 

식당아줌마 : 아니 대낮부터 뭔 술을 저렇게 드셔서 사람 장사도 제대로 못하게 해...으이구 지겨워

식당아줌마 김치 국물 묻은 남은 밥을 밥솥에 다시 넣어 주걱으로 섞는다. 남은 찌개국물도 미리 해놓은 찌개에 섞는다.

수한 : 선배님... 그만 가시죠. 
경혁 : (정신을 차리며...) 그래...미안하다. 너한테는 늘 미안하고 고맙고...  

경혁 아까 주문한 매운고추를 쌈장에 찍어 한 입 문다.

경혁 : 아...(무슨 말을 하려는 지 한 숨만 쉬고...) 아...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듯 하다.

수한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숨 쉬고 눈물 맺히는 선배의 모습이 어쩌면 몇 년 후 자신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

경혁 : 아... 맵다... 이거 아... 진짜 맵다.

# 가로수 길

수한 경혁을 부축하고 걸어오고 있다. 

수한 : 선배님...아까 식당에서 무슨 노래 부르셨길래 싸움이 나신거에요...?
경혁 : 노래?... 한 번 불러줄까?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노래 안부르지만, 
         수한이 널 위해서라면 한 곡 불러 줄 수 있다... 

경혁의 눈에 눈물이 흐를까말까 맺힌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하룻밤을 살아도 아름답게 잠든 꽃을 보듯이.
잊고 사는 마음을 간직하며
세월 가는 줄 모르게..


별 속에 숨어있는 내 그림자를 밟으며...
한 마리 새 인듯이
살아도 좋으련만....

살아왔던 그 날을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인데.....

한숨 짓는 그 마음
어리석어 괜히 눈물 흘린다......



노래와 함께 뉴스 비리에 관한 화면 ins / 경혁의 멱살 잡던 남 노상방뇨 나 담배꽁초 버리는 모습 / 전화했던 수한의 아내 남자 여자 섞여 웃으며 화투치는 모습 / 식당아줌마 밥솥에서 밥 푸고 김치찌개 나르며 손님들한테 웃는 모습  

Fade Out

Film by @ kkolz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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